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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20일 화요일 대본 및 수록곡
 

2007년 11월 20일 (화) 골든디스크 김기덕입니다 / 차 한 잔 하시죠

 

La Golondrina  /  Trio Los Panchos

 

 

 

엄기수 


- 부끄러웠죠 -

군대 간 아들이 며칠 전, 휴가를 마치고 귀대를 했습니다.

예전보다 군대가 많이 좋아지고 음식도 푸짐해 졌지만, 휴가 나온 아들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욕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현실은

이런 마음을 뒷받침 하지 못했습니다. 회사가 문 닫고 아직 새로운 직장을 못 구한 실업자라 당장의 생활비도 아쉬웠죠. 그렇지만 아들이 제 어려운 현실 때문에 부담 받는 건 싫었습니다. 힘들게 군 복무하고 며칠간 휴식을 받은건데 이 시간 만이라도 아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가족들을 철저히 입단속 시키고 바로 지하철 판매를 시작 했습니다. 아들이 오기 전엔 결정을 못 내렸지만, 제 주머니 현실을 생각하니 지하철 승객 앞에서 입이 번쩍 열리면서 하나라도 더 팔려는 욕심만 생겼습니다.  한 세트에 5천원하는 음악 CD를 틀면 좋아하는 분들도 있지만 시끄럽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창피하고 죄송해 얼굴이 화끈 거렸던 저는 당장 때려 치고 싶은 마음이 한 두번이 아니었죠. 하지만 못해 먹겠다고 생각할 때마다 아들을 생각하면 다시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4일째 되던 날.. 뒤에서 ‘아버지’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딴 손님을 불렀거나 내가 잘못 들었겠지, 싶어서 고개도 돌리지 않았는데 제 앞에 아들이 나타났습니다. 아들은 저에게 살짝 눈인사를 건네더니,바로 제 CD 홍보에 나섰습니다. 씩씩하고 굶직하고 적극적인 아들 목소리 때문에 평소보다 매상이 올랐지만 전혀 기쁘지가 않더군요. 주머니는 두둑해 졌지만 나 때문에 아들을 고생시켰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 없이 무거워 졌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아버지.. 가족인데 뭐가 창피해요.. 아버지가 대기업 CEO건, 교도소에 갇힌 사람이건, 제 아버지라는 사실은 변치 않잖아요.” 이렇게 아들은 휴가 나온 상태에서도 씩씩한 행군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아들이 다음 휴가 나올 때는 떳떳한 직장을 구해서 아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신청곡: The Carpenters -Yesterday Once More

미국 출신읜 남매 듀오, ‘카펜터스’의 1973년 작품.

 

 

 

안나미 

 

- 남편의 병 -

남편이 변했다는 걸 알 수 있는 제일 빠른 방법은 돈이었습니다.

신혼 때는 월급의 100%를 무조건 반납했지만, 첫 아이 낳고부터 슬슬 들어오는 돈이 줄었습니다. 겉으로야 통장으로 월급이 송금되니 전혀 변한게 없어 보였지만, 남편 회사에서 수당을 직원들 손에 직접 올려줍니다. 한 마디로 말해 생선을 고양이 입에 넙쭉 물리는 것이죠. 사장님이 기혼자들 심정을 헤아려 준다며 목 축이고 살라고 했다지만, 제 입장에선 아쉬움이 큽니다. 부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신뢰라는데, 이 부분이 월급날만 되면 자꾸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뒤로 줄줄 새는 비상금을 방치할 수 없어 칼을 뺐습니다. 집안을 대수색해서 남편의 비상금을 일망타진 하는데 성공했죠. 그래도 남편은 반성을 하지 않고 더욱 어려운 곳으로만 숨겼는데, 움직이는 동선이 크지 않다보니 제 눈에 쉽게 발각됐습니다. 집에서 가만히 남편이 자주 관심을 기울이는 물건과 장소만 기억해 뒀다가 다음날 수색하면 거의 100% 적중률을 띠었죠. 남편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빨래걸이로 변한 런닝머신 바닥 속에 숨기고, 운전석 시트커버에 숨기면서 강력한 저항을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깊이 숨겨도 남편이 술 먹고 들어올 때 살살 애교를 떨면 모두 찾아낼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은 아들이 수십만원짜리 게임기를 사들고 온 것이 아닙니까.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에게 그 돈은 말도 안 되는 액수라 누구에게 빌렸을거라 생각했지요. 그런데 알고보니 남편이 아들에게 20만원을 맡겼는데, 아들은 그 돈으로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게임기를 덥썩 사버린 것이었습니다. 자기 배가 우선 이었던 새끼 고양이가 대장 고양이 생선을 넙쭉 먹은 것이었죠. 저녁에 허탈하게 변한 남편을 보니 통쾌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습니다. 아마 속이 많이 쓰렸을 겁니다. 하지만 자기 잘못 때문에 아들을 크게 나무래지도 못하고 결과적으로 아들 좋은 일만 시키고 말았습니다.

한번 크게 당했으니 이제 남편의 버릇이 고쳐지지 않을까요??

 

신청곡:  So Much In Love / All 4 One

미국 출신의 4인조 R&B 그룹 '올포원'의 1994년 싱글 차트 4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박나림의 차 한잔 하시죠

최동순님 사연

 

 

 

최현정 


- 아름다운 부부 -


저는 인천에 살고 있는 임신 8개월된 주부입니다. 임신한 관계로 회사를 그만두고 요새는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날엔, 집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 삼아 산책을 합니다. 이번 주에도 여느때처럼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그날따라 벤치에 앉은 연인이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에 사람이 있는 것도 의아했지만, 남자가 아무 거리낌없이 여자의 머리를 쓰다듬고 빰에 입을 맞추는 모습에 웃음이 나더군요. 멀리서 본거라 그냥 젊은 연인인가보다 하고 그 커플을 지나치는데, 뭔가 석연찮은 모습이 눈에 띄더군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연인을 다시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젊은 연인인줄 알았던 그 커플은 40대 정도의 중년 부부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는 휠체어를 탄 뇌성마비 장애인이었습니다. 남편인 듯한 아저씨가 연신 그런 부인을 너무 사랑스럽다는듯 안아주고 머리를 쓸어주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 하더군요. 세상에 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듯 애정표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계속 쳐다보는 것도 실례인것같아 저는 얼른 운동장을 돌기 시작했고, 그 부부는 곧 그 자리를 떠나더군요. 지나가던 초등학생들이 아주머니를 자꾸 쳐다보는데도, 아저씨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웃으며, 부인의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었습니다. 부인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행복해하는 그 아저씨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았습니다. 많은 것을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일에서 행복을 느끼는 그 부부처럼 나도 신랑과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청곡:  You Are So Beautiful / Joe Cocker

영국 출신의 솔 가수 '조 카커'의 1975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5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김선희 


- 따뜻한 선물 -

물가는 비싸고 남편의 월급은 쪼개고 또 쪼개 써도 매일 허덕거리기 바쁘다. 그러나 이번 제사 때는 큰 맘 먹고, 큰 댁 식구들에게 내의 한 벌 씩을 선물하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다행히 동네 입구 속옷 전문점에서 개업 10주년 기념으로 “50프로 사은 대세일”를 하고 있었다. 아주버니와 형님 그리고 다섯 살박이 조카몫으로 내의 한 벌씩을 샀다. 그러고 나니 지갑 속에서는 먼지만 풀풀 날렸다. 이왕 사는 김에 남편의 팬티도 하나 사고 싶었으나, 돈은 2천원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으로 매장 여기저기를 왔다갔다 하는데, 한쪽 구석에 쓰여진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팬티, 메리야쓰 무조건 천원씩”

그것을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 재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다가갔다. 구석자리에 쌓여 있는 그것은 정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올이 약간 풀리고 케이스에만 안 들었다 뿐이지, 정품과 똑 같은 메이커 제품이었다. 케이스야 어차피 집에 가면 버리는 것이고, 속에 입는 옷인데 올 하나쯤 풀렸대서 누가 알아볼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의미심장한 얼굴로 신중하게 가장 표시 나지 않는 것으로 남자 팬티 두 장을 골랐다. 뒤에 올 하나 터진 것쯤, 품질관리 담당자도 아닌 이상 입는 당사자도 모를 것이었다. 가벼운 걸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에 돌아온 나는 사온 팬티를 예쁘게 포장했다. 남편이 돌아오자 그것을 내밀었다.  “당신 선물!” “어? 돈도 없을 텐데?”  “아무리 돈이 없기로서니, 내게 제일 소중한 당신 선물 하나 못 사겠어?”  “내 것 살 돈 있으면 당신 꺼나 하나 사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편은 은근히 좋은지 싱글벙글했다. 다음날 나는 일찍 제사 준비하러 시댁으로 가고, 남편은 저녁에 퇴근하는대로 뒤따라 왔다. “빨리 옷 갈아 입고 당신도 좀 도와주세요.”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간 남편이 이상하게도 붉으락 푸르락한 얼굴로 다시 나왔다.  “당신 나 좀 봐!”   “지금 바쁜데 왜 그래요?” “이래도 몰라?”  “어머!”  처음엔 표시도 나지 않던 그것이 벌써 밤톨만하게 구멍이 뚫려 있었다.  “요즘 떨어진 팬티 입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창피하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마디 안 할 수가 없었다.  “속에 입는데 보이나 뭐... 그런데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니고, 어떻게 알았어요?”   “옷 갈아입는데 조카가 내 팬티 엉덩이가 구멍났다고 어찌나 놀리던지...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여보 미안해요~ 다음에 여유생기면 예쁘고 튼튼한 팬티 사줄게요! 그때까지 조금만 참아요!!


신청곡:  Lovefool / Cardigans

스웨덴 출신의 혼성 5인조 모던 록 그룹 '카디건스'의 1996년 작품.

 

 

 

 

 

 

 





2007-11-20(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