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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1일 목요일 대본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08화 - 또 한번 사랑은 가고


(M) 주제음 (또 한번 사랑은 가고 -이기찬,왁스)


(E) 잔잔한 팝 흐르며

(E) 양주잔에 술 따르는

(E) 마시는


남     반드시 피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비가 오는 날엔 흰색 옷을 입으면 안되고.

        속이 아플 때 매운 음식을 먹으면 안된다.

        그리고.

        가을엔 누군가와 헤어지면 안된다.


(E) 팝 조금 더 흐르며 사이

(E) 다시 술잔에 술을 따르고

(E) 마시고


남     그런 일이 일어나면.

        자꾸만 술을 마시게 되고.

        자연스레 퇴근이 늦어지게 되고.

        또 자연스레 다음날 출근이 늦어지게 된다.

        그러면, 상사에게 야단을 맞기 일쑤고.

        결국 속상해서

        또 그날 밤 술을 마시게 된다.

        말하자면.. 악순환이랄까.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악순환의 고리 한 가운데 서 있다.

 

(M)  술이야 / 바이브


(E) 음악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남     지금 술을 마시고 있는 곳은

        그냥 무턱대고 걷다가 들어온 곳이다.

        세종로 뒤편.

        가로수와 가로등이 적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주고 있는

        그 거리 모퉁이에 있는 가게다.

        나무 문과. 그 문이 열릴 때.. 딸랑...하는 소리가

        옛날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향수 같은 거 말이다.


여     안주 나왔습니다.

남     한잔 더 주시겠어요?

여     같은 걸루요?

남     네. 같은 걸로.


(E) 술잔 따르는


남     특이한 곳이다.

        바텐더인 듯해 보이는 여자는

        한번 일어나 보지도 않는다.


(E) 술잔 밀어주는


여     여?습니다.

남     혼자 일하시나봐요 여기서?

여     네. 사람을 쓸 정도로 장사가 잘되진 않아서요.
남     아.. 사장님이세요?

여     네

남     야.. 부자시네.

여     네. (웃고)


남     별로 웃을 일도 아닌데. 웃는 여자를 보며, 나도 따라 웃게 된다.

        그리고 가게를 슬쩍 둘러보며 생각한다.

        이런 곳은 얼마나 할까...

        저 여자.. 능력있네.

(M) 사랑은 맛있다 / 휘성


(E) 밖에서 비오는

(E) 문 닫으면 빗소리 조금 작아지고


여     비가 오네..

남     오늘은 일기예보가 맞았네..

여     비 온다고 했어요?

남     네. 

여     우산 안가져 오셨잖아요.

남     일기예보를 안 믿는 편이라.

여     몇 번 틀렸다고 안 믿으면 안되죠.

남     .....그런가요?

(E) 술 마시는

여     혹시.. 애인이랑 싸우셨어요?

남     ....헤어졌는데요. 

여     (가볍게) 많이 좋아했던 건 아니었나봐요.

남     네?

여     헤어져도. 헤어진 거 믿기 싫을 땐..

        헤어졌다는 소리 그렇게 쉽게 안나오는 건데.

남     네? 아니.. 그건 그쪽이 물어보니까..

여     저랑 뭐.. 얼마나 친하다구요.

        여기 안오시면 또 볼 사이도 아니고.

        제가 물어본다고 다 정직하게 대답하셔야 할 필요는 없잖아요?

남     그건.. 그렇지만.

여     안주도 시키셨잖아요.

남     네?

여     제가 여기서 이렇게.. 지켜보니까요.

        진짜로 속 아파서 오는 사람들은.. 안주 안먹던데?

        아무리 서비스라고 줘도.. 안먹던데요?

남     (웃는)

여     하긴 뭐.. 그것도 나쁘지 않아요.

        가을이잖아요. 많이 사랑했던 사람 아니라고 해도..

        괜히 슬픈 기분 같은 거 느껴보고. 걸어도 보고. 술도 마셔보고.

        감정의 사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사치. 부려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가을이니까.

(M) 가을이 가도 - 이문세


남     비 좀 그친 거 같죠?

여     네. 안 그치면 우산 빌려드릴려고 했는데.

남     비 올 때 갈 걸 그랬나?

여     어디 가면 좀.. 느끼하단 소리 안들어요?

남     들어요. 

여     (웃고)

남     얼마에요?

여     오만 이천원이에요.

남     여기.. 카드..

여     아.. 잠시만요.


(E) 휠체어 가는 소리


남     까페의 여주인이 한번도 일어서지 않았던 이유를

        그때야 알았다.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엉거주춤하게 일어선 채로

        난 어쩔 수 없이 그녀와 휠체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여     아... 왜요?

남     (당황한 채) 죄송합니다.

여     (상처 받았지만 웃는) 뭐가 죄송해요?

남     아니.. 전 몰라서...

여     몰라서 뭐 실수하신 거 없잖아요.

남     네.

여     그럼 그런 표정하지 마세요. 왠지 제가 더 미안해지니까.

(M)  별 - 김아중


남     그 후로.

        퇴근길에 버스타러 가면서 그 가게 앞을 몇 번쯤 지나쳤다.

        들어가서 술 한잔 마실까 망설이다가

        괜히 어색하고 불편한 기분에 그냥 포기하곤 했다.

        그리고 한달 쯤 후.

        대형 서점에 들르게 됐다.


(E) 서점 분위기. 사람들 소리. 책 넘기는. 방송 소리 등?

(E) 책장 넘기는 소리


남     새로 나온 소설의 서평을 읽어보고 있는데.

        

여     저.. 잠시만요.


(E) 휠체어 타고 다가오는


남     붐비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다가오고 있는 여자는.

        그 까페의 여주인이었다.

        그녀의 눈높이는 일미터 남짓.

        내 옆으로 와서 내가 집어든 책과

        같은 책을 넘겨보면서도.

        훨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

(E) 책장 넘기는


남     (흠흠 기침해보는)


남     괜한 헛기침을 해봐도.


(E) 책장 세게 넘기는


남     책장을 펄럭이며 세게 넘겨봐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무릎을 구부려 그녀 앞에 엉거주춤하게 앉는다.

        그리고 인사한다.


남     안녕하세요. 

(M) 단 한 사람 - 고유진


(E) 커피 후후 불어 마시는, 잔 놓는


여     정말 깜짝 놀랐어요. 이런 데서 만날 줄 몰랐는데.

남     그럼요?

여     네?

남     이런 데 말고 다른 데서 만날 줄 아셨어요?

여     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 가게에 한번쯤 더 오시진 않을까..

        그런 생각은 했어요.

남     그냥 전. 그때 기분이 상하신 건 아닌가 해서..

여     .... 아니에요.

남     그럼 다행이구요.

여     ... 네.


남     그 다음말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나와 버리고 말았다.


남     혹시 주말에 쉬어요? 밤에 말고.. 낮에.

여     ..... 네. 쉬어요.

남     그럼 만날래요?

여     ..........!


남     그녀와 나 사이에 아는 사람도 없다.

        거절 당해도 망신은 아니다.

        다시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또 이렇게 마주치는 우연이 생기진 않을테니까.

        나를 보고 있던 그녀가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연다.


여     그래요. 

        

(M) 눈꽃 - 박효신


(E)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남     약속시간. 약속장소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주말이 될 때까지 생각하고 생각했다.

        내가 왜.. 그녀에게 따로 만나자고 했을까.

        동정심 같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끌렸던 것도 아니었다.

        결론은.. 나도 모르겠다..였다.

        약속을 했으니. 나왔고.

        살짝 긴장도 됐다.

        약속 시간이 지나고 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날 때까진

        좀 늦는가보다..했다.

        그리고 방금 전.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 지났다.

(E)빗소리 

남     또 비까지 내린다.

        난 오늘도 일기예보를 믿지 않고

        우산을 안가지고 나왔다.

(M) 소녀 - 이문세


(E) 빗소리


남     내가 가고 난 후에

        그녀가 온다고 해도. 내가 미안할 일은 아니다.

        나는 충분히 기다렸고. 비까지 오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약속 같은 거..

        처음부터 생각도 안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천천히 돌아서려는데.

(BG)  Pale Blue Eyes / Velvet Underground


남     저 멀리서 그녀가 온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비에 젖은 채로.

        양손으로 휠체어의 바퀴를 굴리며.

        턱이 높아서 한참을 애쓰는 그녀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뛰어간다.

        뛰어가면서 문득 든 생각.

        어쩌면. 내가 저 여자를 지켜줘야겠다는... 그런 생각.

(M) BG 음악 이어지고


=====================================================1부 끝


* 잠시 뒤 2부가 이어집니다.


(E) 낙엽 위를 걸어가는 + 휠체어를 타고 가는


남     그 가을.

        내 곁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었다.

        마치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그동안 나만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여     나 어렸을 때 제일 좋아했던 동화가

        인어공주였어. 

남     왜. 인어공주가 은서씨 같아서?

여     당근.

남     공주병이었구만.

여     그래서 사랑하게 되면. 나도 인어공주처럼 거품이 돼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남     사람이 무슨 거품이 되냐?

        암튼 동화책들도 말야. 애들 이목 끌려고 너무 비과학적인 걸로다가

        사기를 치니까 문제야.

여     사기?

남     아니... 아무리 얘기래두 현실성은 좀 갖춰줘야지.

여     누가 말려. (웃고) 어렸을 때 그런 거 안 봤어?

남     나는 세계위인전집 같은 거 봤어.

여     누구를 제일 존경했는데?

남     나.. 백제 계백 장군.

여     왜?

남     전장터 나가기 전에.. 자기 손으로 부인과 아이들까지 죽이고..

        장렬하게 전사하잖아.

여     그거.. 부인 입장에서 생각해 봤어?

남     ....응?

여     영화에도 나오잖아. 계백장군 부인이 내가 왜 죽어야 되냐고     

        욕하는 거.

남     그거야.. 대의를 위해서...

여     대의는 쥐뿔. 자기 사람. 자기 사랑도 못지키면서 대의는 무슨

        대의야. 난 그런 거 싫어.

(M) 나쁜 사람 - 백지영


(E) 라면 보글보글 끓이는 소리

(E) 냄비 서둘러 놓으며 

남     앗뜨뜨..거.

여     (웃으며) 맛있겠다.

남     여기 주인이 누구야. 배고파서 왔더니 알아서 끓여먹으라네.

여     당신이 끓이는 게 훨씬 맛있잖아.

남     이러니 장사가 안되지. 세는 어떻게 내냐?

여     그러게. 간당간당하네. (웃고)

남     먹어. 퍼지기 전에.

(E) 후루룩 먹는

(E) 전화벨 소리

남     여보세요. 네 어머니.

        아.. 지금 퇴근하는 길이에요. 아.. 그냥 저녁 먹느라구요.

        ..... 아.. 그냥 혼자요. 네. 나중에 전화드릴께요.

여     .... 어머니셔?

남     (약간 미안한) 어.

(E) 후루룩 먹는

여     라면.. 맛있다.

남     저기...

여     응?

남     기분 상하지 않았어?

여     뭐가?

남     아니야.

(E) 후루룩 먹는 소리

여     나는 좀.. 달라.

남     .....

여     기대 같은 거 하는 법을 몰라.

남     ...

여     그래서 실망도 안해.

(E) 후루룩 라면 먹는


남     왠지.. 약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 기대를 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M) 파랑새 - 바비킴


(E) 부릉부릉하는 소리


여     갑자기 왜 차를 샀어?

남     어때? 괜찮지?

여     그렇게 괜찮아 보이진 않는데... 몇 년된 거래?

남     한.... 9년? 그런데 진짜 얌전히 써서 새거랑 똑같대.

(E) 갑자기 시동이 팍 꺼져 버리고

여     새거랑.. 똑같네.

남     에이.. 시동 다시 걸면 되지. 일단 타.

(E) 차 문 여닫고

(E) 시동 어렵게 걸고

남     이거 봐. 벌써 걸리는 게 부드럽잖아.

여     (웃고)

남     어디 갈까?

여     뻔하잖아?

남     응?

여     바다!

(M) 바다여행 - 이선균


(E)파도 소리 거칠게


여     아.. 오랜만이다.

남     시원하다.

여     속이 후련하다.

남     기분 좋다.

여     (자기도 모르게) 달리고 싶다.

남     응?

여     응? 아.. 기분이 그렇다구.

남     업혀.

여     왜 이래.


남     난 고집스럽게 그녀의 휠체어 앞에 등을 대고 버텼다.

        

여     모르겠다 나두.


남     잠시 후.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가벼운 그녀가..

        업혀왔다.

        그녀를 업고 바닷가를 달리기 시작했다.


여     (파도 소리에 묻혀 기쁨의 비명 지르는 소리.. 아주 멀리서 들리고)


남     너무 가벼워서. 돌아보면 그녀가 없을 것 같았다.

        인어공주처럼.

        거품이 돼서 사라져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M) 깊은 밤을 날아서 - 이문세


(E)파도 소리 조용히 들려오고


여     (속삭이듯) 오늘.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를거야.

남     ....

여     고마워.

남     별 보인다.

여     어디? (감탄하는) 진짜네. 진짜 많네.

남     ...... 좋다.

여     그거 모르지.

남     응?

여     당신 만날 때마다. 오늘 말할까 내일 말할까. 고민해.

남     뭘?

여     헤어지자는 말.

남     .....뭐?

여     당신은 나보고 비현실적이라고 했지만.

        나는 완벽한 사랑을 꿈꿔왔거든.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사랑은..

        가장 좋을 때 헤어져서.

        두고두고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야.        

남     ....

여     이번에 얘기할까..하면 더 좋은 날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다음번에 얘기하려고 하면.. 또 그런 생각이 들어서.

        얘길 못했는데.

남     ......

여     오늘보다 더 좋을 수 있는 날은 없을 것 같다.

        여기서 헤어지면. 좋을 것 같애.

(M)사랑한다 말해줘 - 엠투엠


남     한번쯤은 잡아볼 수 있었을텐데.

        난 그녀를 차에 태워 서울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간간이 농담도 하고.

        휴게실에 들러서 국수도 먹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앞까지 가서

        친절하게 대문까지 열어주었다.

        그녀가 말하는 그 완벽한 사랑을..

        완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 밤이 새도록

        차 안에 앉아 내내 멍했던 것 같다.

(M) 애상 - 박효신           

        

(E) 전화기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남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전화기 폴더만을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다.

(E) 빵빵 경적 소리

남     뒤에서 경적 소리가 들릴 때까지

        운전하는 걸 잊고 넋을 놓고 있기도 한다.

(E) 끓는 소리

남     라면이 타들어들 때까지

        딴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한다.

        그렇게.. 몇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M) 희재 - 성시경


(E) 전화번호 누르는. 통화음.


여     여보세요.

남     물어볼 게 있어서 전화했어.

여     (차갑지는 않은. 담담한) 응

남     혹시.. 은서씨가 말한 완벽한 사랑이라는 거에 말이야.

여     .....

남     헤어진 다음에... 남자가 여자를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온다거나... 다시 전화를 걸어온다거나...

        그런 거 집어넣어보는 건 어때?

여     .....

남     내 생각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여     ......

남     뭐.... 그 다음에 헤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아주 나중에 추억할 때도..

        단칼에 헤어져버린 것 보다는...

        남자가 그렇게 와서 매달리고. 한번쯤은 받아주고..

        이런 게 더 낫지 않아?

여     .....실은 있었어.

남     어?

여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사랑에 그런 거 있었다구.

남     ...

여     그래서... 기다리고 있었어.

(M) 사랑하고 있네요 - 엠씨더맥스 (처음부터 조금 길게)


남     길 건너에 그녀가 앉아 있다.

        나와는 다른 눈높이에서.

        나를 올려다 보며.

        다시 헤어져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좋은 순간은...

        얼마든지 남아있을 것이다.

(M) 주제음





2007-10-10(1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