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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303 화 - 가을소나타
(M) 주제음 - 옛사랑 / 이문세
(E) 차 가는 소리
남 난 하루에도 수십명씩
나만의 공간에 누군가를 초대한다.
몇 년 전 명예퇴직을 한 나는 지금
개인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엔 하루 종일 운전을 하는 것이
지치고 피곤했지만
이젠 이 일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참 즐겁다.
대부분은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일 뿐이지만
가끔은 진지한 인생 상담을 하기도 하고
오랜 친구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때론 그들로부터 위로 받고
때론 내가 그들에게 작은 힘이 되며
난 오늘도 거리를 활보한다.
(M) 달팽이
/
패닉
남 오늘은 웬일로 손님이 끊이지 않아
더욱 기분 좋은 날이다.
방금 전 손님이 내리자마자
저만치에서 목발을 짚은 한 여자가
내 차를 향해 손짓을 한다.
(E) 차 가다 서고 문 열리는 소리
남 혼자 타실 수 있겠어요? 제가 내려서 좀 도와드릴까요?
여 아니요.. 괜찮습니다.
남 네... 그럼 뒷좌석으로 조심히 타세요.
(E) 목발 차에 놓는 소리... 의자에 오르고.. 문 닫히는 소리
남 머리를 곱게 빗어 올린 중년의 여인이
힘들게 내 차에 오른다.
그런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언젠가 내가 태운 적이 있는 손님일까?
(E) 차 가는 소리
남 어디로 모실까요?
여 남산으로 가주세요.
남 네.. 알겠습니다.
남 몸도 불편한 여자가
남산엔 무슨 이유로 가는 걸까?
남 저 손님, 음악 좀 틀어도 될까요?
여 네... 그러세요.
(E) 음악 켜는 소리
(E) 백조의 호수 음악 나오는..
여 클래식을 좋아하시나봐요?
남 네... 뭐 음악은 두루두루 좋아하는데
왠지 손님께는 이런 음악이 어울릴 것 같아서요.
여 소리를 조금 키워주실 수 있나요?
남 아... 네...
(E) 음악 소리 커지고
남 참 오랜만에 이 곡을 듣는다.
클래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클래식이었다.
남 이 음악 좋아하시나봐요?
여 네... 저한테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음악이거든요.
남 특별한 사연이요?
남 난 무심코 백미러를 통해 손님의 얼굴을 다시 확인했고
순간 난 심장이 멎는 듯 했다.
내가 태운 손님은
바로 은서였다.
20년 전,
이 음악에 맞춰 하늘하늘 춤을 추던 은서가
지금 바로 내 뒤에 앉아있었다.
(M) 나의 옛날 이야기 - 조덕배
남 내가 썬글라스를 끼고 있어서인지
그녀는 날 못 알아본 듯 했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그녀의 모습을
백미러를 통해 가만히 들여다본다.
참... 많이 늙었다.
(E) 회상 BG, 학교 식당 소음
남 그녀를 처음 본 건 학교 식당이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모습에
난 한동안 넋을 잃고 그녀를 훔쳐보았는데
고맙게도 그녀가 자리에 지갑을 놓고 가버렸다.
난 지갑을 주어 그녀를 따라갔다.
(E) 뛰어가는
남 저기요...
여 네? 저요?
남 네... 저.. 이거...
여 아.. 이걸 어떻게...
남 아까 식당에 두고 가셨더라구요.
여 아참.... 고맙습니다.
(E) 돌아서 걷는데
남 저.. 무용과 학생이신가봐요?
여 네?
남 아.. 지갑 안에 학생증을 봤거든요.
여 네..
남 전 경영학과 3학년 김봉덕이에요.
여 네... 저 그럼.. 먼저 가볼게요.
남 아니.. 저.. 지갑도 찾아줬는데..
그냥 가시는 건가요?
여 네?
남 저도 시간이 많지 않으니까.. 밥까지는 됐구요...
차라도 한 잔 사주시면 보답한 걸로 알게요.
여 아니... 저...
남 아까 보니까 지갑에 중요한 거 다 들어있던데..
나 아니었으면... 돈두 돈이지만..
학생증이며 신분증이며 다 다시 만들어야 했을거 아니에요.
여 저... 지갑 찾아준 건 고맙긴 한데요... 제가 지금 좀 바빠서요.
남 그럼 그냥 가시게요?
여 미안해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남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그 땐 꼭 밥 사겠다는 건가요?
여 아... 네... 그러죠.
남 그녀는 얼떨결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어딘가로 사라졌고
난 그 날 이후
그녀를 보기 위해
무용과 강의실 앞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M) 그녀의 향기 - 이문세
(E) 조용한 클래식 음악
남 그녀는 항상 연습에 열중하고 있었다.
발레를 하는 그녀의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고
난 황홀하게
그녀의 춤추는 모습을 훔쳐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 거기... 누구세요?
(E) 걸어오는
여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남 아.. 저기..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 어머.. 전에 그 지갑 찾아주신...
남 (반가워서) 네.. 맞아요. 기억하시네요?
여 여긴 무슨 일이세요?
남 그냥 지나가다가 음악소리가 나서 한번... 와봤는데...
마침 그쪽이라서...
여 그럼... 저 연습하는 걸 훔쳐보고 있었단 말이에요?
남 아.. 훔쳐보긴요... 제가 원래 발레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나저나... 이런 우연이 또 있네요. 이렇게 또 만나고...
여 설마.. 그 때 일 때문에 나 따라다니는 거에요?
남 아.. 따라 다니긴 누가 따라다녀요...
지나가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본거라니까...
여 그럼.. 그만 가던 길 가보세요.
남 네?
여 절 일부러 찾아오신 거 아니시라면... 가던 길 가시라구요.
남 물론 일부러 찾아온 건 아니지만...
아니.. 전에 했던 말 기억 안나요?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밥 사겠다고 약속했던 것 같은데...
이런 기회가 또 어딨겠어요.. 하하..
여 지금은 연습중이라 바빠요.
남 연습... 언제 끝나는데요?
여 그걸 제가 왜 그쪽한테 말해야하죠?
남 그래야 저두 시간을 내죠. 그쪽이 밥사겠다는 약속.. 지킬 수 있게...
여 (어이없는)
(M) 널 사랑하겠어 / 동물원
(E) 식당 소음
여 제가 그 때 약속을 한 거니까 밥은 사는데요.
이제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아는 척 하지 마세요.
남 내가 싫어요?
여 네?
남 아.. 아니에요... 와.. 오늘 식당밥 디게 맛있다.
역시 얻어먹는 밥이 최고 맛있어요. 그쵸?
여 하.. 참...
남 밥은 은서씨가 샀으니까.. 커피는 내가 살게요.
여 됐어요. 저 바로 강의 들어가야돼요.
남 그래요? 뭐.. 그럼 다음에 살게요.
여 그냥 먹은 걸로 할게요. 다 드셨으면.. 저 먼저 일어날게요.
남 같이 일어나요.
(E) 의자 끄는 소리
남 잘 먹었어요. 그럼 다음에 또 봐요..
남 난 그 날 그녀가 듣는 교양수업을 알아냈고
난 학점과는 상관없이
그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M) I love you - 이재훈
남 내가 매번 수업을 같이 듣는데도
그녀는 아직 날 못 본 것 같다.
난 또다시 우연인 척
그녀에게 다가가야 했다.
(E) 강의실 소음
남 어... 이 수업 듣고 계셨어요?
여 어머..
남 나두 이 수업 듣는데... 와.. 우리 참 인연이 깊네요.
아니.. 여태 수업을 같이 듣고 있으면서도..
왜 한번도 못봤죠? 하하.. 참...
여 그쪽... 스토커에요?
남 네?
여 왜 자꾸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녀요?
남 그게 아니라..
자꾸 우연히 은서씨를 만나게 되니까 난 그냥 반가워서..
아는 척 하는 것 뿐이에요.
여 남자가 왜 그렇게 소심해요?
남 뭐라구요?
여 나 좋아하죠?
남 네?
여 좋으면 좋다 솔직히 말하고 남자답게 대시 못해요?
언제까지 뒤만 졸졸 쫓아다닐건데요?
남 은서씨...
여 내가 바본 줄 알아요?
나 연습할 때 매일같이 와서 계속 지켜보길래..
오늘은 말걸겠지.. 설마 오늘은 그냥 가지 않겠지....
근데 역시나 또 그냥 가버리구...
답답해서 내가 먼저 아는 척 한거에요.
남 네? 그게.. 정말이에요?
여 이제 내가 듣는 수업까지 따라 듣길래...
난 봉덕씨가 나 때문에 수업 듣는 거 다 알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말걸 생각이었어요?
남 은서씨...
남 당찬 그녀 앞에서
난 한 마디도 못한 채 그냥 서있었고
그녀는 내게 환하게 웃어주었다.
(M) 사랑한다면 - 나무자전거
------------------------- 1부 끝 ------------------------
(M) 사랑한다면 - 나무 자전거
남 시간이 지날수록
난 점점 더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그녀의 발레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녀의 꿈을 들어주며
그렇게 그녀 곁에 머무르는 시간이
내겐 가장 소중했다.
(E) 계단 올라가는
여 (숨차는) 아... 아직 멀었어?
남 이제 거의 다 올라왔어.
여 생일날 웬 남산이야?
그리구.. 케이블카 타면 될 걸 왜 굳이 걸어올라가는건데...
힘들어 죽겠네...
남 케이블카 타면 너무 쉽게 올라가버리잖아.
여 근데 그 카세트는 왜 들고 왔어?
남 다 쓸모가 있어서야... (조금 있다가) 다 왔다...
여 아...
남 저쪽으로 가자..
(E) 바람 소리
여 아~~ 정말 여기서 보니까 서울 시내가 다 보이네..
저기 우리 학교도 보인다. 그치?
남 힘들어도 올라오니까 좋지?
여 치...
남 자 이거... 생일선물이야.
여 어.. 뭐야?
(E) 포장 뜯는 소리
여 와.. 발레슈즈네? 너무 예쁘다.
남 신어봐. (있다가) 잘 맞아?
여 응.. 잘 맞아..
남 발레리나로서 정상에 서는 게 니 꿈이라고 했지?
그래서 꼭 여기서 그걸 선물해주고 싶었어.
여 와... 감동이다. 그럼 그 카세트는?
(E) 버튼 누르면 백조의 호수 나오는
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네? 어떻게 알았어?
남 너 매번 이 곡으로 연습하는 거 들었거든...
나 예전엔 이런 음악 들으면 너무 졸렸는데...
지금은 이 음악 들으면 니가 춤추는 게 머릿속에 그려져서
너무 좋아.
여 그럼... 춤 춰볼까?
남 여기서?
여 정상에 서서 춤추는 거 보고 싶다며.. 여기가 정상이잖아. (웃음)
남 그녀가 내가 사준 슈즈를 신고
바람처럼... 사뿐사뿐...
내 앞에서 춤을 춘다.
그녀 뒤로 펼쳐진 서울 시내가
황홀할 만큼 아름답다.
남 그러던 어느 날...
(E) 음악 깔리고.. 발레 하는
남 또 연습중이야?
여 어.. 오빠.. 왔어?
남 연습벌레...
여 뭐?
남 너 이렇게 맨날 연습만 하면 나랑은 언제 놀아주는거야?
여 실기시험이 낼 모레잖아.
남 맨날 그 소리...
여 만족스럽지가 않아.. 동작이 뭔가 매끄럽지도 못한 것 같구...
(뛰어가다가 털썩 주저 앉는) 아아..
남 은서야? 왜 그래? 괜찮아?
여 아아... 나 좀 일으켜줘 오빠...
남 응.. 그래..
여 어... 오빠.. 나.. 왜 이러지?
남 왜 그래 은서야...
여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나지지가 않아.
남 뭐? 자.. 나 잡고 팔에 힘주면서 일어서봐... 자..
여 아.. (철썩 주저앉는) 어떡해.. 몸이 말을 안 들어..
다리가... 다리가 움직여지질 않아.
남 갑자기 왜?
여 모르겠어... 왜 이러지?
남 일단 등에 업혀... 내가 집에 데려다줄게..
남 그녀는 내 등에 업혀 집에 가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M) 잔향 - 김동률
(E) 문 열었다 닫히는 소리
남 좀 괜찮아?
여 응...
남 요즘 니가 너무 무리해서 그런걸꺼야.. 너무 걱정하지 마..
여 글쎄... 나두 그런거면 좋겠다.
남 난 그 날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후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E) 클래식 음악...
(E) 털썩 주저앉는 소리...
남 은서야... 괜찮아?
여 오빠... 나... 이러다 발레 못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
남 그게 무슨 소리야... 니가 발레를 왜 못하게 돼?
여 자꾸 불길한 예감이 들어..
남 너 실기시험 다가오면 너무 예민해져서 그런거야.
그러니까 너무 연습 많이 하지 말고.. 오늘은 그만 쉬자.. 응?
여 알았어.
남 불행히도 그녀의 증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었다.
연습할 때 뿐만 아니라
길을 걷다가도 가끔씩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손에 들고 있던 것을 힘없이 놓쳐버리기도 했다.
(E) 커피숍
남 병원 다녀왔어?
여 응...
남 병원에서는.. 뭐라고 해?
여 (울먹이며) 나... 아무래도 우리 엄마처럼 되는 것 같애..
남 엄마..처럼이라니?
여 우리 엄마... 몸이 굳어서 말을 안 듣는 병이야.
척수소뇌변성증이라고... 처음엔 나처럼 자주 넘어지고
물건을 떨어트리고... 그러다가 정상인처럼 걷기 힘들어지고...
또 아주 심해지면 침대에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병이야.
한국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병인데... 그 병.. 유전이거든...
남 그럼... 치료는 할 수 있는거야?
여 불치병이야. 약을 먹으면 병이 진행되는 속도를 막을 수는 있지만...
완치는 불가능하대... 오빠.. 나 이제 어떡해... 어쩌면 좋아?
(M) too far away
/
정여진
남 그녀의 병은 조금씩 악화되어갔다.
어느 때부턴가는 다리를 절룩이다가
이젠 목발이 없이는 혼자 걷지 못하게 되었다.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그녀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도...
그 모습을 지켜봐야한다는 것도...
(E) 거리 소음, 매미 소리
여 시험기간일텐데 뭐하러 와?
남 시험기간이 원래 더 여유롭잖아.
너 집에만 있는 거 답답할 거 같구 해서...
그래도 이렇게 나오니까 좋지?
여 오빠.. 이제 그만 와..
남 뭐?
여 난 불치병 환자야...
치료를 계속 하면 병의 진행속도는 늦출 수는 있지만
난 어쨌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아야해...
그러니까 우리... 그만 만나자.
남 무슨 소리하는 거야 너... 은서야... 난 괜찮아.
니가 어떤 모습이든... 어떻게 변해가든... 나 상관 안해..
나 그냥... 지금처럼 니 곁에 있게 해줘 은서야....
여 아니.. 오빠도 점점 힘들어질거야.
우리 아빠가 평생 엄마 곁에서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나 너무 잘 알아.. 그래서 난 오빠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다신 오지 마...
(M) 마주치지 말자 - 장혜진
남 그녀가 날 밀어내는 게 아팠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 역시... 자신이 없었다.
그녀 곁을 끝까지 지켜줄 자신이
그녀를 변함없이 사랑할 용기가
내겐 없었다.
(E) 커피 따르는 소리...
여 오지 말라니까 왜 또 왔어?
남 은서야.. 나.. 군대 가게 됐어.
여 그래? 언제?
남 일주일 뒤에...
여 그렇구나...
남 나 군대 갔다 올 때까지 얼른 병 낫구...
다시 오면 은서 발레하는 모습 꼭 보여줘야돼. 알았지?
여 응... 알았어.
남 편지 할게...
여 그래..
남 군대는 내가 선택한 최선의 도피처였다.
그녀로부터...
그리고 그녀에 대한 내 마음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난 결국 그녀에게 편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제대 후
그녀가 어느 요양원에 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난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
(M) 영화 황진이 OST 중 - 그대가 나라면 (두에)
(E) 자동차 경적 소리
여 저... 신호가 바뀌었는데요..
남 네? 아... 네..
(E) 차 출발하는 소리
남 (침묵하다) 저.. 실례가 되는 말씀이지만...
어디가 얼마나 불편하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 팔다리를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병이에요.
다행히 저는 꾸준히 치료를 받고 약이 몸에 잘 맞아서...
병이 무섭게 진행되진 않았어요.
남 그래도 혼자 외출하시는 건... 위험하지 않나요?
더구나 불편하신 몸으로 남산까지 가시는 건 많이 힘드실텐데...
누굴... 만나기로 하셨어요?
여 사실은 오늘이 제 생일이거든요.
제 생애 가장 행복했던 생일을 남산에서 보냈는데...
그래서 생일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남산에 찾아가는
버릇이 생겼어요.
남 까맣게 잊고 지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무렵..
바로 이맘때 그녀의 생일이 있었다는 것을...
남 남산에 좋은 추억이 있으신가보네요.
여 실은... 제 첫사랑과 함께 생일을 보냈던 곳이거든요.
남 아... 네... 그런데 그분이랑은 왜 헤어지셨어요?
여 글쎄요... (한참 있다가) 제가 이기적이었어요.
남 네?
여 그 사람.. 절 참 많이 사랑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긴 제 곁을 끝까지 있어주고 싶어했구요.
그런데... 그렇게 날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생 짐이 되는 게 전
싫었어요. 그래서 보냈는데...
그 사람.. 저 때문에 힘들어서 군대에 갔어요.
남 그 후론 연락이 없었구요?
여 ....
남 원망.. 안해요?
여 아니요.. 나 아직도 그 사람한테 미안한 게 있어요.
그 사람이 군대가서 편지 한다고 했는데... 나 도망가버렸거든요...
그 사람 편지 받으면 나 그 사람을 놓아줄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답장 없는 편지를 보내면서... 내 편지 기다리면서...
그 사람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면...
오히려 제 자신이 원망스러운걸요.
남 머릿속이 멍해진다.
그녀를 놓아버린 건 바로 나였는데..
그녀가 여전히 내 사랑을 믿고 있다는게
놀랍고 또 아팠다.
(E) 차서는 소리
남 다 왔습니다. 여기부터는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셔야 겠네요.
여 네.. 고맙습니다. 저.. 근데...
아까 그 음악... 한번만 다시 듣고 내릴 수 있을까요?
그 사람이 남산에서 그 곡을 들려줬거든요.
남산에 오니까 다시 듣고싶어지네요.
남 네...
(E) 버튼 누르면 백조의 호수 나오는...
남 그녀와 나 사이에
음악이 흐른다.
20년 전 내 앞에서 춤을 추던 그녀는
지금 작은 목발에 의지해 힘겹게 남산을 오른다.
그런 그녀를 잡아주지 못한 채
난 가만히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본다.
(M) 주제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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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 / 이문세
2007-09-05(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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