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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5일 화요일 대본 및 수록곡

첫 곡:  Pretty World / Lisa Ono

 

2007년 6월 5일 (화) 김기덕의 골든디스크 / 차 한 잔 하시죠

 

지관민 


1년 전, 저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작은 커피 전문점을 시작했지요. 한달 쯤 지난 어느 날,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오셨습니다. “카페모카 한 잔 줘요. 장사 잘돼서 돈 많이 벌어야지” 오실 때마다 늘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다음 날에 또 오셨고, 그 다음엔 다섯 잔을 주문하시며 커피가 참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른들은 대게 다방 커피, 즉 믹스된 커피나 헤이즐넛 정도를 많이 찾으시는데, 카페모카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에 그 아저씨는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아저씨는 가게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만 계셨습니다. 비가 내리던 어느 늦은 밤, 약주를 한 잔 하신 아저씨께서 또 커피를 주문하셨습니다. “비도 오는데 오늘은 드시고 가세요.”      “그럴까?” 가게 안으로 들어오신 아저씨.. “아가씨, 여기 정화조가 어디 있는지 알아? 저기 안쪽에 있어. 그거 하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저는 이곳이 전에도 커피숍이었으니까, 그 때 인테리어를 하셨던 분인가 생각했습니다.  “전 주인과 이 가게랑 사연이 깊어. 그리고 아가씨 얘기도 마누라한테 들었지..”  순간 가슴에 무언가 울컥 북받쳤고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동안 아저씨께서 왜 가게 안에 들어오시지 않았는지,

커피에 대해 많이 아셨고, 늘 딸 대하듯이 저에게 말씀하셨던 이유를 그제야 알게 됐습니다. 17평 남짓한 이곳엔 아주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2년 전, 스물 아홉 살이었던 아저씨 따님이 커피숍이 너무하고 싶어서 손수 인테리어도 하고 고생 끝에 드디어 오픈했답니다. 그런데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그동안 앓고 있던 병이 악화되어 끝내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로워서 부모님은 이곳을 다른 용도가 아닌, 꼭 커피숍으로 두고 싶어서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고,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 철거하려던 그 때, 저와 인연이 되었고, 커피숍이 저의 꿈이었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권리금도 없이 이곳을 선뜻 내주셨습니다. 아저씨는 팥빙수는 이렇게 해야 맛있고, 자리 배치는 이렇게 해야 손님들이 편안해 하고...  따님에게 미처 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저에게 하십니다.

 “ 나 다 먹었으니 이제 갈게.. ” 조금씩 멀어져가는 아버님의 뒷모습이 왜 그렇게 슬퍼보이던지... 그 날 저는 이곳을 나만의 공간이 아닌, 그 언니와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신청곡:  Evergreen / Susan Jacks

캐나다 출신의 포크가수 '수잔 잭스'의 1980년 작품으로 인기 차트에 오르지 못한 숨겨진 포크의 명곡.

 

 

박양희


내 이름은 엄마입니다. 직업도 엄마구요. 장래 희망도 엄마입니다.

처음 엄마라고 불러주던, 그 꼬맹이를 대면했을 때, 모든게 신비로웠습니다. 작은 입술이 연신 옴실옴실 거리는게,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엄마를 거짓말 쟁이로 만들곤 했지요. 생후, 스무날이 지나자 친정 아버지는 삼칠 생일상을 차려주었고, 건강하고 총명하라며 대견해 하셨습니다. 젖을 빨다 새근새근 잠이 들던 그 아이가 이제 스물 네 살이 됐습니다. 세상에서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안겨주며, 언제나 함께 할 것 같았던 그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따라 울산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엄마라고 명명해 주던 그 아이가 자기들의 세상으로 돌아간 요즘, 엄마라는 이름이 사무치듯 그립습니다. 수십번 씩 불러주고 확인해 주었던 그 자부심이 이젠 홀로서기를 연습할 때가 됐나 봅니다.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하고 눈이 시리도록 보고 싶습니다.

차와 음악이 있는 풍경이 요즘 제 생활 속에서 아리도록 슬픕니다.


신청곡:  Yesterday / Singers Unlimited

미국 출신의 혼성 4인조 아카펠라 그룹 '싱어스 언리미티드'의 1975년 리메이크 곡. 비틀즈의 1965년 작품으로 아카펠라로 멋지게 리메이크했음.

 

 

김명신 


 - 또 다른 아들 -

  

녀석이 함께 살게 된지도 어언 7개월이 다 되어 가고 있다.

처음에 녀석을 데리고 올 때만 해도, 과연 얼마나 견딜 것인지

반신반의 했었는데... 이렇게 잘 견뎌내고 있으니 정말 장하다.

며칠 전에는 "이모, 저 담배 끊을거니까, 그 돈으로 건강보험이나 하나 들어 줘요"  하는 게 아닌가? 이 아이는 태중에서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외조부모 밑에서 자라야만 했다. 하지만 온갖 사고를 치는 바람에 결국 우리 집에 머물게 됐다. 학교까지 때려 치우고, 방황하던 이 녀석. ‘그래.. 사랑으로, 관심으로 대하면 좋아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남편과 나는 이 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남편 회사에 취직을 시켰는데, 2교대로 이어지는 주야간의 힘든 노동을 이 녀석은 잘 견뎌냈다. 그리고 지난 달, 그동안 번 돈을 모아 제 발목을 잡아왔던 카드 빚을 청산하던 날, 녀석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모. 이젠 더 열심히 살게요."  지금까지 이 모든 걸 묵묵히 지켜봐 주셨던 시어머님께 감사하고, 남편에게 고맙고, 제 공부방 하나를 기꺼이 내주고도 불평 한번 하지 않았던 아들 녀석들이 대견하다. 또 다른 나의 아들인 조카 녀석은 이제 스물 일곱. 마음을 다잡아 성실한 사회인으로,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도 낳아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이모는 간절히 바랄 뿐이다.

 

신청곡:  Endless Love /  Luther Vandross & Mariah Carey

최고의 알엔비 남녀가수 '루더 밴드로스'와 '머라이어 캐리'가 호흡을 맞춰 1994년 싱글 차트 2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원곡은 다이애나 로스와 라이오넬 리치가 81년 듀오로 발표해 빌보드 싱글 차트 9주간 정상에 올랐던 노래.


 

박나림의 차 한 잔 하시죠 : 박정숙님 사연

 

 

익명


-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


그 여자 :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을 사먹었던 때가 언제인가 싶다.

한참을 울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속편하게 술을 먹는다는 그의 말에 화가 치밀어 한바탕 쏟아부어줬다. 그랬더니 전화도 꺼놓고 새벽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 인간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 남자:  요즘 회사 사정이 엉망이다. 얼마 전, 스카웃해온 이팀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비춰왔다. 이 프로젝트를 하려면 이팀장이 꼭 필요한데.... 이팀장 기분도 달래줄겸 술 한잔 하고 간다고 집에 전화를 하니 아내가 또 잔소리를 시작해댔다. 이 팀장이 들을까봐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그 여자:  이 인간 언제 일어났는지 아침부터 컴퓨터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할 것이지....남편 옷주머니를 보니 술집 계산서가 나왔다. 이 돈이면 일주일 생활비인데.. 나는 당장 급한 마음에 패물까지 팔려고 하는데...... “지금 패물도 팔 형편인데 술 먹을 돈은 있어? 어?”  눈물이 핑 돌았다  말없이 컴퓨터만 보고 있던 남편이 헤벌쭉 웃으며, “돈 생기면 당신 좋아하는 아구찜 사먹으러 갈까?” 했다. 남편의 말에 나는 그냥 문을 닫고 말았다. 이제는 얘기하기도 싫다


그 남자:  술을 잔뜩 먹었는데도 집에 오니 잠이 오지 않았다.

선잠을 자고 일어나 요즘 뜨는 직종에 대해 검색하는데, 아내가 지갑의 명세표를 보더니 또 잔소리를 해댔다. 그냥 영수증 처리할거라고 거짓말을 했다. 패물까지 팔아야한다는 아내의 말에 미안해졌다. 인터넷 기사에 ‘아구찜으로 하루 매출 400만원’이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아구찜 먹으러 갈까’하는 말이 나왔다. 아차 싶었다!! 아내가  조용히 문을 닫고 나갔다

 

그 여자:  하루 종일 신경을 너무 많이 썼더니 밤 9시가 되니 졸음이 쏟아졌다. 12시쯤 됐을까? 주방 쪽에 가보니 남편이 라면에 밥을 말아 정신없이 먹고 있었다. “또 먹어? 저 배 좀 봐. 살쪄! 그만 좀 먹어!” 요새는 남편 밥 먹는 모습만 봐도 화가 치밀었다


그 남자:  돈이 없어 저녁을 못 먹었더니 집에 오니 배가 많이 고팠다. 그냥 잘까 했지만 너무 배가 고팠다. 라면을 먹고 밥을 말아먹으려는데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그때 먹은 라면이 내 목구멍을 막고 있는듯하다.

    

신청곡:  Way Back Into Love / Hugh Grant & Drew Barrymore  

휴 그랜트, 드류 배리모어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 >의 주제곡.

 

 

 

정미희 

 


- 이젠 서로 가려운 등 긁어주며 -

  

집이 작다보니 아이들 있을 때는 서로 부딪쳐서, 우리는 언제 평수 넒은 집에 한번 살아보나 했는데,, 이젠 아이들 모두 객지로 공부하러 나가고 둘만 있다 보니, 작은 집이나마 썰렁한 게 넓어 보인다. 이젠 TV 채널 싸움 하지 않아도 되고, 간식을 만들 필요도 없어 집에만 가면 남아도는 게 시간이다.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안방에 누워, 좋아하는 스포츠나 낚시 채널 돌려가며 입맛대로 보고 있고, 나는 나대로 거실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 콧물 찍어내가며 재미나게 보고 있지만, 이건 아니다 싶다. 힘들었지만 예전처럼 아이들 웃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담장너머로 들리고, 맛있게 익어가는 음식 냄새가 나는 그때가 그리운 것은 왜일까. 남편이 안방에서 뭐 먹을거 없냐고 큰 소리로 부른다.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뒤져보니 일주일에 한번씩 아이들 올 때 사다 놓은 만두밖에 없다. 냉동만두를 찜통에 쪄서 갖다줬더니, 한 개 먹어보라는 말도 하지 않고 한 쟁반을 다 비워 버린다. 밉지만 오늘만은 봐주기로 했다. 근데, 좀 있다 또 부른다. 등이 가려우니 좀 긁어달란다. 효자손을 갖다 주니 내 손으로 직접 긁어달란다. 손톱을 세워 박박 긁어주었더니 살갗이 벌겋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남편은 아프지도 않은지 고맙다고 한다. 지금 우린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좋아서, 사랑해서도 아니고 그냥 지금까지 그렇게 살 붙고 아옹다옹 살아왔으니,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싸울 일도 없고, 서운해 할일도 없고, 그냥 이대로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면서 서로 등이 가려우면 긁어주고, 맛있는 것 있으면 두 손 잡고 먹으러 가고, 좋은 곳 있으면 구경하러 다니며, 그렇게 늙어가야 할 것 같다. 없는 살림에 아이들 키워가며, 뒤돌아보지 않고 정말 아끼고 또 아껴가며 바지런하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조금은 넉넉하고 느긋한 삶이 내 앞에 놓여 있기를 바란다.


 

 

 

 

 

 

 

 

 





2007-06-05(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