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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9일 화요일 대본 및 수록곡
 

2007년 5월 29일 (화) 김기덕의 골든디스크 / 차 한 잔 하시죠

 

 

김진숙


- 옛 날 목욕의 추억 -


저는 시골태생인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 지금은 시골에도 목욕탕과 사우나 문화가 보편화됐지만, 제가 어렸을 적의 목욕은 연중행사의 하나였죠. 저희 어머니는 가마솥에 물을 가득 채우시고, 커다란 아궁이 속으로 장작더미를 밀어 넣으셨습니다. 물이 뜨거워지면 큰 목욕통인 빨간 대야를 부엌 바닥에 대령하고는 저의 옷을 하나 둘 벗겨내시고 통속에 앉히셨습니다. 어머니가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부엌 앞, 뒷문을 단속하시는 동안, 저는 물의 뜨거움을 참지못해 몇 번이고 발을 들었다 놨다하면서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물의 뜨거움도 잠시. 조금 있으면 물 밖으로 노출된 피부에 소름이 돋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부터 어머니의 중노동은 시작됩니다. 때를 미는 아픔을 견디지 못해 ‘아야~’ 하고 소리를 지르며 짜증스러워하는 저를 두고 어머니는 엄살이 심하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  때 좀 봐라. 국수가락 같아서 잔치 열어도 되겠다.”  아프다며 낑낑대고 몸부림치는 저의 등짝에 손자국을 내시며 때를 밀어주셨던 어머니. “그래도 씻겨 줄 때가 좋은거다.” 하시던 어머니의 음성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군요. 고만고만한 5남매를 씻기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텐데, 어머니는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제 제가 어른이 되고 ‘씻겨줄 때가 좋은거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은 요즘, 씻기 싫어하는 막둥이 아들 녀석을 구슬려 목욕을 시키고 나면,

자연스레 어머니의 대사가 흘러나옵니다. “씻겨줄 때가 좋은거다.” 이 얼마나 사랑이 가득 담긴 아름다운 말입니까. 그때의 그 크나큰 어머니의 사랑. 이제는 가슴 한 켠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신청곡:  Vincent / Don Mclean

미국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돈 맥클린'의 1972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까지 기록했던 노래.

 

 

이동영


- 친애하는 김기덕 오빠께 -


오전이면 라디오를 습관처럼 켜놓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미스 때부터 정말 몇 년째 오빠의 방송을 듣고 있네요. 세상에는 좋은 음악들이 너무도 많아서 정말 큰 행운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 두 귀로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있고, 두 눈으로 가사를 읽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이 음악들이 사라진다면 얼마나 세상이 적막해질까요.  오빠.. 저는 사실 조울증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음악을 자주 들으니까, 조울증이 조금씩 나아지는 거 있죠. 계속 밝은 노래만 듣고, 긍정적인 가사를 발견하면 다이어리에 적다보니 저의 감성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언젠가 TV에서 이런 장면을 본 기억이 납니다. 어떤 남자가 자살을 하기 전,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죠.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말씀하십니다. “ 죽지마라. 세월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 이 고통은 너를 더 크게 하려고 있는 거란다. 죽을 일 아니다. 지금은 죽지마라.” 정말 요즘 사람들, 죽고 싶다는 사람 참 많습니다. 속상해 죽겠고, 경기가 어려워서 죽겠고... 살맛 난다는 사람 별로 없잖아요. 그렇지만, 우리 곁에는 음악이 있습니다. 좋은 음악 많이 듣고, 다른 사람과 정서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귀로 듣는 라디오는 정말 우리들의 삶에 일부인 것 같네요. 지금, 힘든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 힘든 세상, 그래도 살아볼만하다고 생각하시고,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조울증을 멋지게 극복했듯이 말입니다. 기덕 오빠. 고맙습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좋은 음악,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셔서요.


신청곡:  Survivor / Destiny's Child

미국 출신의 3인조 여성 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2001년 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박나림의 차 한잔 하시죠

이경진님 사연

 

 

 

 

윤순자 


- 기차여행 - 


어느 날, 저녁 준비로 한창 바쁜데,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임 장소가 강촌이고, 성북역 일요일 오전 11시17분 출발인데 갈 수 있냐고.....  참으로 몇 십년 만의 기차 여행이던가.

반가운 친구들의 모습이 대합실에 하나 둘 보인다.

학창시절  때의 들뜨고 철없이 낭만을 꿈꾸던 여행과는 달리 차분한 분위기속에 기차에 올랐다. 창밖으로 스러지는 빗물이 나와 함께 달리기를 한다. 레일 위로 기차는 그저 그렇게 무심히 달려가고, 대롱대롱 맺힌 창가에 빗물이 세월을 움켜쥐듯 나처럼 안간힘이다.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없듯이, 풍경들도 그렇게 내게 안녕을 고하고 나는 또 그 시간을 삼킨다.  몇 십년이 넘는 친구들과의 정겨운 만남. 몸살 같은 사춘기를 같이 겪어냈고, 목련꽃 그늘아래 교정을 거닐고, 함께 아파해주고, 같이 울어주던 친구들.. 시집가던 날 진심으로 행복을 빌어주었고, 아기를 낳으면 축하해 주었다. 우린 서로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야 말로 허물없는 친구였다. 그래서 늘 편안하고 그립고, 헤어짐이 아쉽고,

다음 모임이 기다려지고, 얼굴만 보고 있어도 무작정 좋은가보다.

일상을 접어두고 잠시 떠나왔는데도, 숲과 계곡과 새소리의 향연에 맑은 샘물에 마음이 정화되듯, 또 다른 문으로 통하는 길을 걸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이를 먹으니 너희들이 왜 이렇게 점점 좋아지는거니?" 강촌역 기찻길 언덕아래 진 초록빛 나뭇잎 사이로 망울망울 맺혀있던 보랏빛 오디는 계절을 앞서가고, 우린 그렇게 깔깔대며 현실에 묶인 채 상행선 기차에 몸을 싣고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오늘을, 돌이킬 수 없는 추억으로 가슴 한 쪽에 묻은 채.


신청곡:  She's Gone /  Black Sabbath

영국 출신의 하드록 밴드, ‘블랙 사바스’의 1976년 록 발라드.  

 

 

 

최재영 


- 소운동회 -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후 갖는 첫 소운동회.

저는 맞벌이 하는 처지라 한번도 급식당번이나 청소를 하러 학교에 가보질 못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왜 연주 엄마처럼 우리 반에 와서 반찬 안 나눠줘? 엄마는 왜 복도 청소 하러 안와? 나도 엄마가 왔으면 좋겠는데...” 우리 아이도 다른 엄마들처럼 제가 학교에 자주 왔으면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운동회 날은 아예 월차를 내고, 아침 일찍 아이와 김밥을 싸서 학교 운동장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이 오늘 운동회 행사 중, 청,백팀 학부모 계주가 있는데,

우리 반 대표로 누군가가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아이의 기를 살려 주고 싶어 얼른 “저요”하고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있던 선생님들과 학부형들이 ‘우와~~’하고 환호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딸 아이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지요.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 뛰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선생님은 반대표 계주에 앞서 몸을 좀 풀게, 한번 뛰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곱 명이 뛴 그 달리기에서 제가 그만 꼴등을 한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죽기 살기로 뛰었는데...정말 뛰는데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하기사 20년동안 달리기라는 걸 해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잘 뛸수가 있겠습니까? 엄마들의 아우성... 연습 경기에서 1등한 동주 엄마가 대표로 나가야 한다고 야단입니다. 일단 이기고 봐야 하니까 실력 있는 선수가 나가야 한다고... 저도 그 말에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반 대표에서 짤리고 말았지요.. 이 일을 어쩌나... 아이의 기를 마음껏 살려 주고 싶었는데...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수연아 미안해. 그래도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 했단다.

 

신청곡:  Run And Run / Country Lovers

‘컨트리 러버스’의 1972년 작품으로 안토니오 이사시 이사스멘디 감독, 로버트 미첨, 올리비아 핫세 주연의 1972년 영화 '썸머타임 킬러'의 주제가.

 

 

 

 





2007-05-2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