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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9일 목요일 음악에세이 대본 및 수록곡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58화 - 내 사랑 내 곁에


(M) 주제음 (내 사랑 내 곁에) / 김현식


남     이게 뭐야?

여     보험 안내자료야.

남     보험 들게?

여     응. 당신 종신보험..

남     나이 먹어 뭐하러?

여     아니.. 그렇잖아.. 요새 수명도 많이 늘어났다는데.

        한쪽이 어떻게 되면, 나머지 한쪽이...

남     그런데 그게 왜 하필 나야?

여     어쨌든 아직까진 당신이 돈 벌어다 주고 있고.

        또 남자가 여자보단 수명이 짧대잖아.

남     하여간 이 여자...

        야... 기분 묘하네 이거...

여     뭘... 만약을 대비하자는건데~

남     (버럭) 아, 그 만약이 왜 하필 나냐구.

(M)  Bird On The Wire / Leonard Cohen


(E) 설거지하는 소리

여     아우, 그렇게 오래 살고 싶어?

        뭘... 화를 내기까지 해..?

남     됐어, 이 여자야. 내가 헛살았지, 헛살았어.

여     나는 진짜 딴 뜻이 없다니까?

        당신 혹시 어떻게 되더라도, 남은 식구들이라도...

(E) 신문 뒤적이는

남     야... 이거 봐라...

        남편 보험금 노리고... 살해시도...

여     여보!! 

남     믿을 사람 하나 없다니까....

여     자꾸 그럴래?

남     그거나 줘봐. 건강검진 받아야 된다며.

여     됐어. 하지 마.

남     아, 줘봐. 받을 거야.

(M)     Can't Help Falling In Love / Bob Dylan


남       그리고 얼마 후.


(E) 전화벨 소리

여     여보세요.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신데요?

        .......왜요? 네. 알겠습니다.

(E) 전화 끊고

남     왜?

여     보험산데. 

남     응

여     건강검진을 다시 받아봐야 한다는데?

남     왜?

여     몰라. 

남     뭐가 그렇게 복잡해? 하여간...

여     왜 그러지? 괜히 불안하게.

남     불안하긴 뭐가 불안해.

        아... 아직 보험도 안 들었는데 나 먼저 갈까봐?

여     아유 증말, 자꾸 그럴래?

(M) Foolish Games / Jewel


남     우리는 평범하게 살아온 부부다.

        70년대에 만나 결혼을 하고

        결혼해서는 아이 둘을 낳았고

        그 뒤론, 집 하나 장만하기 위해,

        아이들을 대학 보내기 위해

        세월을 보낸 사람들이다.

        세상이 정해놓은 수순에 따라,

        거기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내가 왜 암에 걸려야 하는가.

(M) Sorrow / Mort Shuman


여     응? 뭐라구?

남     혹이 하나 있는데, 괜찮대.

여     그런데 왜 보험을 못 들어?

남     나이도 있고... 그런 것까지도 다 따지나보지 뭐.

여     그럼... 그 혹인가 뭔가는 어떡해?

남     수술하면 뭐.. 괜찮겠지.

여     놀래라. 괜히 놀랬네.

        된장찌개 먹어. 맛있다.

남     응... 


남     이런 얘길 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냥 솔직하게 다 얘기하려고 했는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여     그런데 여보, 미숙이 알지.

남     응

여     걔 남편 암이래. 췌장암.

남     ....그래?

여     미숙이 울고불고 난린데, 너무 안됐더라.

        어쩜 좋아 걔넨?

(M) L'umanita / Caterina Caselli


남     죽을 가능성 반, 살 가능성이 반이라고 했다.

        뭐 그따위 진단이 다 있는가.

        그런 말은 나도 하겠네.

(E) 바람 부는

남     퇴근하기 전에 회사에

        휴직서를 내고

        거리로 나섰다.

        바짝 마른 낙엽들이

        거센 바람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 다 그런거다.

        나에게만 생긴 일도 아니고.

        내 동료에게도,

        아내의 친구 남편에게도,

        흔하게 생기던 일이다.

        이런 일이...

        나에겐 생기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건

        자만이었다.

(M) Changes / Black Sabbath


(E) 커피 잔

여     갑자기 웬일이야? 차를 다 마시재구?

(E) 귀뚜라미 소리

남     여보... 있잖아...

        나 휴직계 냈어

여     휴직계? 왜?

남     수술 받아야 되잖아.

여     수술. 간단한 거라며.

남     수술 좀 받고, 쉬고 싶어서.

여     뭐?

남     너무 지쳐있었던 것 같아서, 좀 쉬려구.

여     이이가 정말.... 그럼 애들 학비는 어쩌라구.

        당신네 회사 휴직하면 돈 안나오잖아.

남     안 나오지.

여     지금 정신이 있어, 없어.

        이 잘난 집 사느라구 적금도 다 깨고

        가진 돈 하나 없는데.... 덜컥 휴직을 하면 어떡해.

남     그냥 몇 달만.

여     아니 그럼... 동민이 내년 등록금은 당장 어쩌라구.

남     몇 달이야. 평생 일했는데, 몇 달도 안돼? 몇 달도?

(M) Sympathy / Rare Bird


(E) 귀뚜라미 소리만.... 고요하다....

여     여보.... 자?

남     .....

여     당신...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냐?

남     .....

여     그 수술이라는 게.... 진짜 그냥...

        맹장보다 더 간단한 수술.. 맞어?

남     ......

여     여보.....

남     ......

여     여보....

남     암이래.

여     뭐?

남     암이래. 위암.

여     정...말?

남     그런데 수술하면 괜찮을 거래.

        요샌, 암은 병 축에도 안 든대잖어.

(M) Adagio / New Trolls


남     울고 불고 난리가 날 줄 알았던 아내는

        오히려 담담하다.

        어두운 방에 무릎을 모아 안고 앉은 채

        멍하다.


남     여보....

여     ......

남     여보.... 괜찮아?

여     왜 말 안했어?

남     그냥...

        입이 안 떨어졌어.

여     (피식) 내가.... 기절이라도 할 줄 알았어?

남     당신 혈압 높잖아.

여     내 걱정을 다하고.

        당신 진짜 죽을 때 된 거 아냐?


남     아내가 너무 담담해, 오히려 이상하다.


남     농담이 나오냐 지금?

여     그래. 당신 말대로

        요즘 암이 병축에나 껴? 수술하면 될거야.

남     .........그래 뭐.....

여     이럴 줄 알았으면 암보험에나 들어놓는 건데.

        미숙이는 남편 암진단 받고 나서

        삼천 받았대던데.

남     뭐?

여     아니.... 그렇다구....

(M) 왜 나만 아프죠 / 장혜진


(E) 경쾌하게 도마질하는 소리

여     여보. 밥 먹어.


남     아내가 너무 아무렇지 않자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E) 숟가락 들고

남     당신, 기분 좋아보인다?

여     응? 내가 뭘? 평소랑 똑같은데?

        앗 뜨거....

(E) 찌개 놓고

여     청국장 대령했습니다.

남     아니.... 남편이 암에 걸렸다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여     뭘 아무렇지도 않아. 심란하지.

        심란해두 어떡해? 엎질러진 물인데.

남     .......대단하다. 대단해.

        나 혼자 오바해서, 당신 충격받을까봐

        말도 안하고 끙끙댄 거 아냐.

        이렇게 신나할 줄 알았으면

        하루라도 빨리 얘기해주는건데.

여     신나긴 누가 신나한다 그래.

(E) 조금 먹고

여     그런데, 당신 입원 날짜가 언제라 그랬지?

남     다음주 목요일.

여     그럼 일주일 남았네?

남     응

여     우리, 여행갈까?

(M) 그림자 / 박화요비


남     아직까지 많이 아프거나

        어디가 불편한 곳은 없었기 때문에

        여행을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내의 너무도 평온한 태도에

        난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E)숟가락 탁 놓는

남     뭐? 여행?

여     응. 수술받고 어쩌고 나면 한동안 꼼짝도 못할텐데.

        단풍 구경이라도 갔다 오자.

남     속편한 소리 하고 있다.

        단풍 구경? 당신이나 실컷 해.

        이 여자 웃기는 여자네 그래?

        당신, 나 죽고 나면 돌아서서 웃겠다. 응?

여     누가 그런대?


남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고 나서

        집을 나와 버렸다.

        아내가 속상해하고 슬퍼하는 모습을 보일까봐....

        그렇게 걱정했으면서.....

        아무렇지 않아 보이니 왠지 약오르는

        이 마음은 뭘까.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아내가.... 아무 일 없이 잘 살까봐....

        오히려 두렵다.

(M) Shape Of My Heart / Sting


(E) 현관문 삐끅열고 들어오는

남     밤 12시가 넘어

        집에 돌아왔다.


여     (조금 멀리서 숨죽여 흐느끼는 소리)


남     불꺼진 안방에서

        아내의 울음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난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모자라고, 어리고, 유치한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아내 얼굴을 볼 수가 없어

        다시 밖으로 나갔다.

(E) 문 열고 나가는


남     옥상에 올라가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렇게 서 있는데.

(E)전화벨 소리

남     아내였다


남     여보세요

여     (아무렇지 않은) 어디야?

남     어.... 그냥.....

여     내가 아침에 좀 그랬다고 그새 삐졌냐?

        아유.... 유치해서 정말.... 빨리 안 들어와?

남     좀 있다가....

여     뭘 좀 있다가!

        자꾸 그러면 집에서 확 쫓아낸다!

        아니, 암? 그거 요새 다 걸리는거야.

        뭘 그런 거 갖고 그래. 내 친구들한테 얘기했더니

        열에 다섯은 자기 남편이 위암이라더라.

남     ..........

여     하여간 무슨 일 같은 거 가지고 엄살을 부려야지.

        얼른 들어와. 문 잠궈버리기 전에.

(E) 뚝 끊는


남     내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보이면서도

        돌아서서 눈물을 삼켰을 아내.

        그 마음을 몰라줘서.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했다.

(M) All My Trials / Mickey Newbury


(E) 들어오는

여     아유, 이제 오냐? 어딜 그렇게 헤매다 오셔?

남     ......

여     난 당신 들어올 줄 알고 먼저 자고 있었는데,

        일어나 보니까 아직도 안 들어온거야. 그래서....

남     우리 여행가자.

여     응?

남     가자구 여행. 단풍 보러 가자구.

여     언젠 안간다며.

남     가자. 왜 안 가. 날도 좋은데.

여     왜 갑자기?

남     오늘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당신 말이 맞다 싶더라구.

        입원해서 항암치료 받고 수술하고 그럼

        놀러다닐 시간도 없을텐데.

여     .....정말?

남     응. 내일 당장 가자. 짐이나 싸.

(M)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 조용필


(E) 파도 소리

여     아우... 바람이 차네. 당신 괜찮어?

남     시원하고 좋은데 뭐.

여     단풍 보러 가자더니, 왜 갑자기 바다로 오재?

남     글쎄.....갑자기 또 바다가 보고 싶네.

여     당신 옛날에도 그러더니.

남     응?

여     생각 안나? 왜, 예전에 우리 연애할때두

        한밤중에 나 불러내다가 바다 보러 가자구....

        아유.... 호호호.. 그럴 때가 있었네.

남     그랬나?

여     기억 못하는거야?

남     기억이 날 듯도 하다. 그때 갔던 데가.... 강릉이었나?

여     맞어. 강릉.

(E)파도 소리 한참 후

남     둘이만 바다 온 거, 그럼 한 삼십년만인가보다.

(M) The Water Is Wide / John Gorka


(E) 걷는

여     살아보니까, 세월처럼 후딱 가 버리는 게 없네.

        마음은 그때 그대론데.

남     내가 그때 당신한테, 그런 약속 하지 않았나?

        나한테 시집만 오면 평생 행복하게만 해주겠다고.

여     그랬지. 내가 그 뻥을 믿고 결혼을 하다니....

남     한번도 당신한테 미안해 본 적이 없었는데.

        요새 좀 미안해.

여     아니, 왜 나한테 미안해 본 적이 없었을까?

        미안한 일이 많았을 걸로 아는데?

남     그냥... 다음에 잘하면 되지....

        늘 그렇게 생각했거든.

여     그런데?

남     ......그런데..... 잘해줄 다음이 있을까.....

        나한테 그런 날이 남아 있을까.....

        그런 생각이...

여     (잘라 버리며) 참나. 별 소릴 다해.

        다음이 왜 없어? 왜 없어?

남     그냥.... 그런 마음이 들어....

여     다음이 왜 없어! 당신처럼 씩씩하고 좋은 사람한테

        다음이 왜 없냐구.


남     아내는 그날도 울지 않았다.

        나 혼자 고개를 돌린 채

        눈물을 삼켰을 뿐이었다.

        아내는 내 눈물을 닦아주지 않고,

        계속해서, 다음이 왜 없냐고..... 되뇌기만 했다.

(M) Dead Are Dancing / Toni Child


(E) 새소리, 걷는

여     단풍 좋다..... 여보 괜찮어?

남     나 괜찮어. 그렇게 자꾸 물어보지 마.

여     알았어..... 

(E) 걷다가

여     길이 좀 울퉁불퉁하네. 여보 괜찮어?

남     괜찮다니까!!!

여     .....어.... 그래......


남     괜찮지 않았다.

        자꾸만 속이 거북했고, 토하고 싶기도 했다.

        그걸 참고 있으려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왔다.


여     여보... 괜찮....어?

남     괜찮다고.... 몇 번을 말해.

(M) 사슬에 영혼을 뺏기다 / JK 김동욱


(E) 바람 부는

남     산 정상에 올랐다.

        세시간을 올라온 산이지만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남은 일은 내려갈 일 뿐이었다.


남     아무 것도 없는데.....

        바람밖에 없는데.... 여길 왜 죽자고 올라왔을까.

여     그런 거지 뭐.

남     여보....

여     응.....

남     수술이 잘 될 거라고는 하는데

        만에 하나.....

여     만에 하나 같은 거 듣기 싫어

남     그래도 만에 하나.

        당신도 만에하나 몰라 내 보험 들려고 했잖아

여     .......

남     만에 하나, 내가 수술 도중에 잘못된다거나 그러면 말이야

여     ......

남     애들을 잘 부탁해.

여     당신만 아빠고 난 계모야?

        당신이 안부탁해도, 내가 다 알아서 해.

남     그래.... 

        그리구.... 당신..... 새로 결혼해.

여     이 양반이 미쳤나? 뭐?

남     바로 하지는 말고, 애들 시집 장가 보내놓고 나서....

        나중에.....

여     내가 알아서 해. 정말 웃겨.

        내려갑시다.

(M) 한계령 / 양희은


(E)  내려오는 소리

남     산을 내려오는 내내

        아내와 나는 한마디 말이 없었다.

        아내의 화가 난 등만 바라보며

        난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무릎을 꿇고 쓰러진 줄을 모르는 아내는

        한참을 먼저 내려갔고.....

        잠시 뒤 뒤를 돌아보고는

        놀란 눈으로 뛰어 올라왔다.


여     여보...! 여보!

(M) 그대라는 이름이여 / 마야


남     괜찮아요. 긴장하기는.....

여     병원 가자니까?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남     가기 싫어 글쎄. 어차피 내일이면 갈거잖아.

여     그래두.....

남     뭐든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지금 내 기분이 어떤 줄 알어?

        다.... 소중해... 다.....

여     여보....

남     당신이랑 함께 있는 이 시간도 소중하고.

        함께 해온 세월도 소중하고.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        

        내가 싫어했던 사람들

        아침마다 떠올랐던 해. 밤마다 떴던 별.

        그냥 다 소중해 다.

        이걸 왜 몰랐을까?

(M) Goodbye My Love Goodbye / Demis Roussos

        

(E) 걷는

여     여보. 나는 당신이 어떻게 되기 전까진

        죽어도 안 울거야.

남     .......그래

여     그리구 당신이 어떻게 되면

        당신 따라갈거야

남     (허헛 웃는)

여     정말이야

남     당신이 이렇게 열년지 몰랐는데?

여     그냥.... 미련이 없어.

남     애들은.

여     .....애들 시집 장가만 보내고. 따라가지 뭐.

남     수경이 애 낳으면 산후조리는 해줘야지

여     그럼..... 산후조리만 해주고. 따라가지 뭐.

남     애 낳으면 키워줘야지.

여     ........

남     그렇게 살다 보면 살아지는거야. 그게 사는거야.

        당신 장모님 돌아가셨을 때도, 따라가겠다 그랬잖아

여     ........

남     그런 게.... 사는거다...

(M) 하숙생 / 최희준


(E)스트레쳐 카 가는 소리

남     수술실로 들어간다.

        아내가 내 손을 잡고 있다.

        눈에 눈물이 가득하지만

        울지는 않는다.

        아내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주고 있다.

        

여     있다가..... 수술 끝나고 봐요. 꼭....


남     나도....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수술실의 문이 조용히 닫힌다.

(M) 주제음  내 사랑 내곁에 / 김현식





2006-10-18(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