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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21일 목요일 대본 및 수록곡
 

M You're Beautiful / James Blunt
 영국 황실 근위병 출신의 팝 가수 '제임스 블런트'의 2006년 작품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 기록.
 담백하면서도 진솔한 느낌의 노랫말과 서정적인 선율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음.
 

음악에세이 - 노래가 있는 풍경


제 254화 - 계절을 따라간 사람


주제가 If You Go Away / Rod Mckuen


여     가을이 조금씩 깊어갈 무렵.

        온통 도도하게 초록이던 숲이

        겸허한 빛으로 바래져갈 무렵.

        이 무렵이 되면

        왠지 쓸쓸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모든 게 다 좋은데.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서 제 가정을 이루었고.

        나는 아직 몸이 건강하고.

        모두 다 좋은데.

        뭐라 말할 수 없는 고독이

        가슴을 꽉 메워서

        그 흘러넘치는 쓸쓸한 마음을

        뭐라고든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M)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 양희은


(E) 대문 열고, 쓰레기 놓는

여     아침 일찍 집안 청소를 하고

        쓰레기 봉지를 버리러

        잠시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남     잘 있었어?

여     예? 누구....

남     나 몰라? 허어... 이제 자기 서방도 못알아보는구만.


여     닮은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다.

        내 앞에 서 있는 이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이라면....

        이건 말이 안된다.

        20년 동안 연락이 없어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아 돌아온다는 건, 말이 안된다.

(M) Wild Mountain Thyme / Joan Baez


남     뭘 그렇게 멍하게 쳐다보고 있어? 오랜만이지?

여     뭐요? 오랜..만?

남     당신도 많이 늙었구만 그래.

여     지금, 당신이라고 했어? 그쪽이 누군데, 날보고 당신이래?

남     그래그래. 알았어.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구.

        이사를 하두 많이 다녀서 이 집 찾아오기 힘들었어.

(E)들어오려는, 막아서는

여     누구 맘대로 여길 들어와?

남     뭐? 이 여편네가....

여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빨리 사라져!

남     이 집이 누구 집인데 나보고 사라지래?

여     뭐라구?

남     이 집 가장은 엄연히 나야! 알어?

        이거 놔. 배고프니까 밥이나 차려와

(E)문 열고 들어가는

(M) Solitude's My Home / Rod Mckuen


남     아, 밥 달라니까? 내 말 안들려?

여     좋게 말할 때 나가는 게 나을거야.

        당신 여기 온 거 애들이 알아봐. 흉한 꼴 보이고 쫓겨날거야!

남     애들이야, 당장 원망스런 맘에 그럴 수도 있겠지.

        그치만 걔네들이 다 누구 자식이야. 내 자식이야!

여     그애들이 왜 당신 자식이야?

        한참 지 애비품 그리울 때

        온다간다 말도 없이 사라졌던 사람이야.당신이!

남     애들은 많이 컸지?

여     그게 궁금해?

남     어디 사진 같은 거 있음 좀 가져와봐

여     당신이 우리 애들 사진을 왜 봐! 무슨 자격으로!

남     아 궁금해서 그래. 어떻게 컸나, 누구 닮았나....

여     당신은 안닮았으니 걱정도 마!

        당신 안닮고 다들 착하고 성실하고 반듯해.

남     그래?...... 키우느라 고생했겠네.

여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얼마나...

남     알았으니까, 밥이나 줘.

(M) 야생마 / 블라드미르 비쇼츠키


여     20년 전.

        그와 나는 그저 그런 부부였다.

        서로를 애닯게 사랑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못 잡아 먹어 안달이지도 않은...

        남편이 아침에 일 나갈 때

        아이들과 함께 손을 흔들어주고

        저녁엔 장을 봐서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는.

        가끔은 이거저거 집어던지며

        부부싸움도 하지만

        한 사람의 유치한 농담에

        피식 웃고 스르르 풀어져 버리기도 하는...

        그냥 그런.....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부부...말이다.

        우리에게 그 일이 있었던 건

        딱 지금처럼, 가을이 깊어져 가고 있던

        그런 무렵이었다.

(M) Long Long Time / Linda Ronstadt


(E) 대문 열고 들어오는

여     왔어요? 저녁 청국장 끓였는데.

남     먹었어.

여     벌써?

남     어. 

여     누구랑?

남     친구 만나서.

여     요새 무슨 친구를 그렇게 많이 만나?

        당신이 친구가 뭐 얼마나 된다구...

남     (버럭) 내가 친구가 왜 없어?

여     왜 화를 내고 그래요?

남     여편네가 말이야, 가장 알기를 우습게 알고.

        말끝마다 무시하니....

여     아니 내가 언제.. 그냥 농담한 거 갖구...

남     이러니 내가 집에 들어오기가 싫은거야.

여     뭐라구요?

남     됐어! 피곤하니까 발 씻을 물이나 준비해놔


여     이유도 없는 신경질과 타박이 이어졌다.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M) 가을의 노래 / Anna German


여     당신 오늘 나랑 얘기 좀 해

남     피곤해

여     안돼, 일어나. 얘기 좀 해.

남     왜 이래!

여     당신이야말로 왜 이래? 당신, 여자라도 생겼어?

남     ...그래! 생겼다.

여     뭐?

남     생겼다구. 여자가 생겼다구.

여     ....그게 지금 자랑이니?

        왜 그렇게 당당해?

남     당당하지 못할 건 또 뭐야

여     뭐?

남     내가 처음으로 사랑하는 여자야.

        그래. 나같은 놈도 사랑이라는 걸 해보게 됐다 이거야!

        그게 왜 자랑이 아니야?

여     당신... 미쳤어?

(M) Cancao Do Mar / Dulce Pontes


여     그때 남편은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만 같았다.

        다정다감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성실한 사람이었다.

        무뚝뚝해도, 표현이 없어도  

        속으론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때

        내 앞에 있던 사람은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여     ........뭐하는 여잔데.

남     술집에 있어.

여     뭐?

남     빚 때문에 잡혀 있는거야.

        내가 걜 구해줘야 돼. 걔한텐 나밖에 없어.

여     당신이... 왜 그 여잘 구해줘? 당신이 뭔데!!!

남     말했지!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여     그럼! 그럼 나는 뭐야! 나는 뭐냐구!

        가진 거 하나 없는 당신한테 시집 와서

        이날 이때껏 10년을 죽어라 일하고

        당신 애 셋을 낳아준, 나는 뭐냐구!

남     당신은 그냥........ 아무 것도 아니야.

(M) By The Rivers Dark / Leonard Cohen


남     이혼해. 당신도 다 알게 됐는데

        더 살 것도 말 것도 없잖아.

여     애들은!

남     애들은 당신이 키워

여     당신, 나 위자료 줄 돈이나 있어?

남     내가 위자료를 왜 줘!

여     뭐?

남     당신 지금 나 안 보여?

        당신 말대로, 뻔뻔하고 파렴치하잖아. 내가 그런 놈이야.

        그러니까, 나한테 더 이상 뭐 기대하지 말고

        당신 혼자 살아갈 준비 해!

여     정말..당신 미쳤어?

남     그래. 나 미쳤어. 내가 생각해도 미쳤어.

        그래도 어쩔 수가 없어.

여     잠깐 그러다 말거야. 남자들 원래 그런다구, 그래...

        우리 엄마도 그런 말 했어. 우리 아버지도, 젊어 바람 많이

        피우셨대.

남     잠깐 바람피는 거 아니야.

        나, 그 여자 만난지 3년 넘었어.

여     (충격) 뭐? 3년?

남     그동안 나도.... 참을만큼 참았고.

        돌이키려고도 많이 해봤어. 그 여자랑 헤어져도 봤고.

        안 만나려고 모진 짓도 많이 했었다구!

여     ..........

남     그런데 다 소용 없는 걸 어떡해!

        얼마 전에 그 여자가 이혼 안 할거면 그만 헤어지자고 하는데.

        눈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구!

        더 이상은 안되겠어. 당신을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헤어지는 게 백번 나아. 응?

여     이게 날 설득한다고, 달랜다고 될 일이야? 이게?

        우리 애들은 어떡하고!

남     이런 꼴 보여주는 게 애들한텐 더 안 좋아. 그냥 당신이 잘 키워줘.

여     나는..... 절대로..... 내가 죽어도..... 이혼은 못해.

        가고 싶으면 가고, 그여자랑 살고 싶으면 살아.

        나는 이혼 안해!

(M) 제발 / 이소라


여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그 사람이 전세금을 모두 빼서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와 아이들은 한순간에

        오갈 데 하나 없는 신세가 되었다.

        사정을 알게 된 집주인이

        보증금을 받지 않고 월세만 받겠다고 해주어

        식당일을 하면서 겨우 1년을 그곳에서 버텼다.

        그리고 1년 후엔

        그 집을 떠나야만 했다.

        하룻밤을 자다가도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열두번씩 벌떡벌떡 일어나

        그 사람 이름을 부르고 욕을 하고 울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선...

        혹시라도... 그 사람이 찾아왔는데

        집이 이사가 버려서 못 찾으면 어떡하나....

        그런 바보 같은 걱정에...

        난 이사를 할 때마다

        예전 집주인에게 내가 어디로 간다는 걸 꼭 알려주었다.

        혹시라도 어떤 남자가 찾아와

        내가 어딨는지 물으면, 친절히 가르쳐 주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M) My Heart Always Goes / Anne Vada


(E) 밥상 탁 놓는

여     이뻐서 주는 거 아니야.

        집에 들어온 거지라도, 밥은 먹여서 보내야 한다고

        옛날에 울엄마가 그러셔서.... 그래서 적선하는 셈 치고 주는거야

남     장모님은.....

여     10년 전에 돌아가셨어.

남     .........딴 덴 몰라도, 장모님 돌아가신 덴 가봤어야 했는데.

여     이제와서 그런 말 해봐야 무슨 소용이야?

남     (한숨 쉬고) 그래. 아무 소용 없는 얘기들이지.

(E) 국 한번 떠먹고

남     당신 솜씨는 여전하네

여     (흥! 코웃음)

남     이상하게.... 맛있다는 집 어딜 가도.... 이런 된장찌개맛은 없더라구.

        이게 없어요 이게..... (다시 한번 떠먹고) 좋다.

여     왜. 그 여자가 밥은 안해줬나보지?

        이런 찌개는 안 끓여줬나봐?

남     ........

여     (울음 꾹 참으며 한이 서려 내지르는) 왜에! 그 여자랑 살지! 영원히         살지, 여긴 왜 왔어! 그 여자 옆에서 살다가... 살다가 죽지!!!

        그래서 그 여자한테 장례 치러달라 그러지!

        그 여자랑 나란히 묻히지! 그렇게 영원히 함께 있지, 여긴 왜 왔어!

        20년전에 다 버리고 갔으면서, 여긴 왜 왔어!! (서러워 우는)

(M) Saddest Thing / Melanie Safka


여     한참을 우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국이 차갑게 식어 버리고, 창밖으로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E) 비가 투두둑 떨어지는


남     오고 싶었어.

여     ............오고 싶어던 사람이 20년이 넘도록 소식 한 장 없었어?

남     ........ 그 여자 찾아 다녔어.

여     뭐?

남     아프다고 해서... 그때.... 우리 전재산이었던 전세금 다 빼서...

        수술하라고 돈을 줬는데.. 다 거짓말이었어.

        그 돈을 다 갖고 도망가 버려.... 그거 찾아 다녔어.

여     (기막힌) 뭐가 어째?

남     나중에 딴놈이랑 살고 있는 거 찾아냈는데.....

        분에 못이겨서 때렸다가 감옥에까지 갔다 왔어.

여     (너무 기막혀) 잘..했다. (울음 섞인) 어휴.... 어휴... 잘했어... 정말....

남     20년이 긴 세월 같은데... 살아보니까 그렇게 길지가 않네.

        실수 몇 번 했는데..... 20년이.... 일생이..... 훌쩍 가 버렸어.

여     내 인생은 어떻고.....

남     ..........

여     분해하다가, 원통해하다가, (가슴 탕탕 때리며) 이 가슴을 치다가....

        20년이 가 버렸어. 그 꽃같은 세월이... 다 가 버렸어.

(M) Ter Outra Vez 20 Anos / Bevinda


(E) 창밖으로 쏴아 비오는 소리

남     나는 당신이 재혼했을 줄 알았는데.

여     징글징글해. 한번만으로도 오만정이 다 떨어졌어.

        남자도, 결혼도, 다.... 이 징그러운 걸 두 번을 어떻게 해!

남     이 사람아. 세상에 다 나같은 남자만 있는 게 아니야.

여     (코웃음) 그러거나 말거나. 난 다 싫어.

남     ..........나 기다린 건 아니구?

여     미쳤어? 내가 당신을 기다려? 하......!

        당신이 나한테 어떡하구 갔는데.

        애들 봐서 그냥 살아만 달라고 거지처럼 애원하는 나한테

        당신이 어떻게 했는데!

        내 한은 아무도 어떻게 못해줘. 가슴이 너무 아프고 아파서

        다 문드러졌어. 이런 문드러진 가슴으로, 내가 누굴 기다려!

남     여보......

여     왜!

남     나.....

여     .......뭐!!

남     밥 한 공기만 더 줘.

여     인간아! 지금 밥이 그렇게 잘 넘어가냐? 어후.... 내가 이런 인간을

        한때라도 남편이라고 믿고 살았다는 게 정말..... 어후....

(M) Soria Moria / Sissel


(E) 밥 먹는 소리

여     정신 없이 밥을 먹는 남편의 얼굴을

        그제야 조금 자세히 쳐다보았다.

        많이 늙어 있었다.

        굵고 가는 주름들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흰머리가 가득했다.

        터지고 갈라진 상처가 많은 손엔

        때가 끼어 있었다.


여     다 먹고.... 좀 씻어.

남     응?

여     좀 씻으라구. 냄새 나잖아.

남     어.....

여     비도 오고 하니까, 오늘밤은 그냥 여기서 자.

        그래도 내일은 가야돼! 애들 알면 정말 가만 안 있을거야!

남     우리 수정이 수진이... 수현이..... 어떻게 자랐나?

여     수정이는 간호학과 나와서 간호사해. 중학교 교사하는 남자 만나서

        아들 하나 낳구 잘 살아.

남     그래.수정이가 어려서부터 똘똘했지.

여     수진이는... 은행 다니다가 거기서 사람 만나서 결혼했고.

        거긴 아들 하나 딸 하나야.

남     막내.. 우리 수현이는.

여     수현이는 공무원 됐어. 지 부인은 수예점 하고.

        바로 이 동네 살아. 이틀에 한번은 나 들여다 보고.

남     그래.... 애들 얼굴도 가물가물한데.... 다들.... 잘 커서....(말 못잇고

        가만 있다가) 나는 당신이 애들 잘 키울 줄 알았어.

        그 애들 시집 장가를 혼자 다 보냈으니.... 많이 힘들었겠어.

여     당신 자식 키운다고 생각 안 했어.

        내 자식, 나만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하고 키웠어.

        그래서 견뎠어.

(M) Varsog / Anne Vada


(E) 장롱 문 여는

여     자, 이거... 입고... 자.

남     ............이거.. 옛날에 내가 입던 거 아니야?

여     그래. 당신 잠옷. 맞아.

남     이걸 여태 갖고 있었어?

여     갖고 있긴 누가.

        아까워서 안 버렸던 거 뿐이지.

남     .....이리 비켜봐.

(잠시 있다가)

남     이 옷들을 다 그냥 뒀어 그래.

여     버리기 아까워서. 내가 원래... 내 물건 잘 못 버리잖아.

남     미련한 사람.....

        나 같았으면.... 너무 미워서.... 옷이고 뭐고

        다 찢어버렸겠다. 다 태워버렸겠어.

        미련하게... 이걸 여태 뭐하러 가지고 있었어.

(M) Nancy / Leonard Cohen


(E) 텅하고 놓는

여     이거... 애들 앨범이야.

        일년에 한번씩은 가족사진도 찍었고. 거기 다 있어.

남     ........

여     당신이 미운건 미운거고

        어쨌든 당신이.... 우리 애들 어떻게 컸나 궁금하다고 하니까.

        보고 싶음 보라구.

남     ...........그래. 알았어.

여     다 보고 두 번째 서랍에 넣어놓구.

남     그래.

여     그럼 자.

남     ............

(E) 문 닫고 나가는


여     방문을 닫고 나오니

        마음이 더욱 스산했다.

        저 방 안에... 그 사람이...

        20년만에 돌아온 그 사람이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울컥.... 미운 마음이.... 한편.. 안된 마음이....

        가슴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E) 방문 열고 나오는


여     왜 나와. 안 자구.

남     자야지....

여     ......

남     여보.

여     내가 왜 당신 여보야.


여     그 사람이 내 손을 잡는다.


남     뭐하러 그랬어.

여     .....

남     20년 동안 스무번은 이사를 했던데.

        여기저기... 왜 그렇게 연락처를 남기고 다녔어.

        작년에 그 많은 집들을 다 다녀갔다며.

        혹시라도 누가 물어보면 가르쳐 주라고 연락처도 남기고.

여     ...........당신이 안 죽었다면.... 한번쯤은 찾아올 것 같았어.

남     찾아오면 어쩌려구.

여     글쎄... (눈물 나는) 뺨이라도 한대 세게 때려주고....

        욕이라도 실컷 해주고.....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아프게 살았는지

        그거 구구절절 다 얘기해 주고.....

남     겨우 그거 하려구?

여     .........

남     (떨리는 깊은 한숨) 내가... 이 죄를.... 이렇게 갚나보다....

여     무슨 소리야.

남     지금 내 마음이 지옥이지. 어디가 지옥이겠어.

        정말...... 미안해... 여보......

        내가 틀렸어. 내가 나빴어. 내가 죽일 놈이야.

        정말.... 미안해...

(M) 미안해요, 고마워요 / 변진섭


(E) 비 내리는

여     밤새 청승맞은 가을비는

        왜 그렇게 내리는지.

        난 창문을 열어놓고 빗소리를 들으며

        참 서럽게도 울었다.


(E) 새 소리

여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벌써 아침이었다.

(E) 방문 열고 나가는

여     그가 잠들어 있는 방문 앞에서

        깨워볼까 망설이다가

        고단할 것 같아

        그냥 아침을 하기로 했다.

        그 사람이 좋아하는 반찬들이 무엇이었더라....

        애써 떠올려 보면서

        노릇노릇하게 생선을 굽고 김에 기름을 발라 굽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였다.

        고이 모셔놓았던 은수저까지 꺼내

        상위에 나란나란 올려놓고 나서

        방문을 두드렸다.

(E) 노크

여     일어나. 아침 먹어.

(조용)

여     아침 먹으라구.

(E) 문 열면

여     아무도 없었다.

        곱게 개인 이불과.... 잠옷 밖엔...

        아무 것도.

(M) Adle E Aleina / Silje Vige


여     허탈함에

        난 무너지듯 앉았다.

        그는 또 한번 날 이렇게 배신하고 가는구나....

        너무 흘려 말라버린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뜨겁게 솟는다.

        한참을 울고 나니

        잠옷 위에 놓인 하얀 봉투가 보인다.

(E)봉투 열어보는

여     봉투 안엔 편지 한 장과

        만원짜리 열장이 있다.


BG   Le Jardin / Kevin Kern
 

남     여보.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찾아온 집인데.

        괜히 왔다... 후회를 많이 했소.

        그냥... 내가 죽었으려니 생각하고 살아가는 게

        당신한텐 나았을 것을.

        마지막까지 내 욕심만 차리다가

        당신을 너무 많이 흔들어 놓은 것 같아서. 더 미안하오.

        아이들이 커간 모습이 담긴 사진 보면서

        나 정말 많이 울었소. 이 아이들이 이렇게 커가는 동안

        단 한번도 곁을 지켜주지 못했다니. 이렇게 예쁜 내 자식들인데.

        그 애들 옆에 한결같이 있어 줬던 사진 속 당신 보면서

        내가 죽어 지옥에 가서 이 죄를 갚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지난 20년 동안, 단 한번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단 한번도 당신한테 미안하지 않은 적이 없었소.

        그리고 단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소.

        이 돈은...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내가 가진 게 이 정도라서...

        하지만 앞으로 또 돈이 생기면... 생기는대로 보내리다.

        받아주길 바래. 꼭.

        그리고 애들 사진이랑 당신 사진 몇장 가져가오.

        미안하오. 

(M) One More Time / Richard Marx


여     그리고 며칠 후....

        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가 공사장에서 추락사했다는 전화였다.

        유품으로 받은 그의 지갑 속에선

        우리집 연락처가 적힌 쪽지 한 장과
        사진 한 장이 나왔다.

        나와 아이들이 함께 찍은 가족 사진에....

        자신의 사진을 이어붙여 놓았다.

        사진 속의 그는..... 우는 듯 웃고 있었다.

        난 우리의 마지막 가족 사진을.....

        앨범의 마지막장에.... 고이... 붙여 놓았다.

(M) 주제음  If You Go Away / Rod Mckuen             

        


        

        


        





2006-09-21(09:09)